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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NFT 그레이쥬스
        그레이쥬스 아트 스튜디오

        대표 정연찬(47세) / 아트디렉터 박영주(40세)

        경상북도 문경

        그레이쥬스 아트 스튜디오는 설치미술가 출신의 정연찬 대표와 일러스트레이터 박영주 디렉터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다. 서울에서 치앙마이로, 치앙마이에서 다시 경북 문경으로……. 여러 번 터를 옮기는 과감한 모험 속에서 그레이쥬스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들은 망원경 대신 만화경을 들고 세상을 순례하는 여행자 같았다. 그레이쥬스의 세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대칭되고 수평선에 놓인다. 이 둘과 대화하는 동안 나는 마치 거대한 방주에 올라탄 느낌이 들었다.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이 방주 안에서는 이겨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마저 느끼면서.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찬: 안녕하세요. 경상북도 문경에서 그레이쥬스 아트 스튜디오의 브랜드 기획, NFT 프로젝트 매니징 그리고 ‘잡무’를 맡고 있는 대표 정연찬입니다.(웃음) 영주 디렉터와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는 CF 업계에서 일하다 설치미술가로 4년 정도 활동했어요. 그 후에는 카페와 바 운영을 하기도 했어요.
        영주: 아트 디렉터 박영주 입니다. 그레이쥬스에서 전방위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어요. 리빙, 패션, NFT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작업을 확장하는 중이에요. 이전에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어요. 곧 영주의 방 이라는 제 단독 브랜드 런칭을 앞두고 있어요.

        설치미술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브랜드라니, 설명만으로도 근사하게 느껴져요. 그레이쥬스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연찬: 브랜드를 만들기 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영주 디렉터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이 업계의 생리를 알게 됐어요. ‘세상에, 이런 대우를 받고 그림을 그린다고?’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제가 아는 영주 디렉터의 재능이나 에너지에 비해 너무 가치 없이 그림들이 소비되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신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합쳐서 더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일을 모두 그만두고 우리 둘만의 것을 만들어 보자!”라고 이야기를 하게 됐죠.
        영주: 저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언젠가는 내 감각을 표현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만 가진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연찬 대표를 만나서 회심의 결단을 내렸죠. “그래, ‘아트'라고 부르는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브랜드를 우리 함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 브랜드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쌓아가자.”라고 이야기했어요.

        〈헤어질 결심〉을 작업한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도
        서로의 차이점 덕분에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나머지의
        공통점으로 인해 작업을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한다고 하죠.
        남다른 탄생 비화만큼이나 '그레이쥬스'라는 브랜드 명의 뜻이 궁금한데요.

        영주: 우리 두 사람은 절반은 너무나 다르고 나머지 반은 닮아있는 그런 관계랄까요. 왜요, 〈헤어질 결심〉을 작업한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도 서로의 차이점 덕분에 극본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나머지의 공통점으로 인해 작업을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한다고 하죠. 저희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 ‘GRAY’ 와 ‘JUICE’ 같다고 생각했어요. GRAY와 JUICE는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잖아요. 무겁고 단조로운 회색의 이미지, 그리고 톡톡 튀고 경쾌한 주스의 느낌……. 반면에 무언가와 섞였을 때 정체성을 가진다는 공통점을 가져요. ‘GRAY’는 말 그대로 회색이죠. 흑과 백이라는 양 극단의 색이 섞여서 만들어진 만큼, 동시에 그 사이 무한히도 많은 색을 일컫는 색이고요. ‘JUICE’ 역시 서로 다른 재료들이 뒤섞여서 새로운 맛과 만들어 내잖아요.
        연찬: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들을 모아, 본연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커다란 무언가로 새롭게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레이쥬스의 아트워크에는 서로 대치되거나 모순되는 것들을 함께 뒤섞는 연출을 즐겨 해요. 저희의 슬로건이 ‘MIX ALL’인 것도 이것의 연장선에 있죠.

        그레이쥬스를 만들기 전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들려 주실래요?

        영주: 둘이 처음 만난 시점에 저는 이미 경력이 꽤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였어요. 오랜 시간 동안 생계형 작가로 늘 빠듯하게 일을 해 왔었어요. 정기적으로는 디자인 관련 플랫폼에 일러스트 납품을 하고, 비정기적으로는 출판물, 광고물 등 외주 작업을 쉴 새 없이 병행했어요. 쳐내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일상의 권태로움과 창작에 대한 갈증이 계속 쌓여만 갔죠.
        연찬: 원래 대학을 졸업하고 CF 업계에서 세트 디자인과 특수 소품을 제작하는 일을 했어요. 그렇게 3~4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그 업계의 생리에 조금 지치더라고요. 조금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길로 몇 년 간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설치미술 작업을 했어요. 전시를 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너무 외로워서 바를 차리게 됐죠.

        설치미술 작가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바를 차리게 된 이유는요?

        연찬: 4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설치미술 작업에 몰두하면서 내 안으로 너무 침잠하다 보니, 점점 세상과 고립되어 가라앉는 느낌이었어요. 혼자 작업실에 계속 있으니까 너무 우울했어요. 정말로요.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었어요. 사람도 좀 만나고 싶고……. 친구들도 아지트처럼 모일 수 있고 전시도 선보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직장인의 꿈이자 농담인 ‘카페나 차리고 싶다'를 정말로 시전해 버렸죠.(웃음) 총 3번 공간을 바꿔가며 운영했었는데, 처음엔 카페였다가 두 번째는 바(bar)였고 세 번째는 카페와 바를 같이 하는 공간이었어요. 처음엔 합정, 두 번째는 홍대 놀이터, 세 번째는 산울림 극장 쪽 기찻길 근방에 차렸어요. 세 번 모두 갤러리처럼 운영해서 작가들의 전시도 개최하면서 쉴 틈 없이 무언가를 기획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4년 정도 운영했었네요. 그러다 영주 디렉터를 만나게 됐죠.

        ‘그레이’와 ‘쥬스’를 닮은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해지네요.

        영주: 홍대 근처에 있는 제 단골 바의 사장님이었어요.(웃음) 연찬 대표가 두 번째로 운영했던 바였죠. 사장님이 굉장히 특이하신 분이더라고요.(웃음) 자주 갔던 그곳에서 전시도 하는 걸 보면서, 같이 갔던 친구에게 ‘우리도 여기에서 전시를 해볼까?’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자주 갔던 그 바에서 전시도 하고, 바 사장님이랑 연애도 하다가 결혼도 하게 됐죠. 하하하.

        작품을 기획할 때 두 분이서 어떤 방식으로 아이데이션 과정을 거치나요?

        연찬: 아시다시피 저희 두 사람은 시골에서 24시간을 함께 하고 있어요.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만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죠.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눈 뜨고 감는 순간까지 각자 생각한 영감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추상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결과물로 진화해 있더라고요.

        그레이쥬스는 논픽션입니다.(웃음)
        제 삶에서 가장 관심 있고 중요한 사건들이
        작품의 메시지가 되어 주고 있죠.
        많은 작가들은 작품 속에 본인을 투영하기도 하는데요. 그레이쥬스에도 페르소나가 있나요?

        연찬: 그레이쥬스의 작업들은 모두 제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캐릭터들의 성별이나 세대, 사회적인 지위 등을 특정하지 않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관 역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려고 해요.
        영주: 사실 모든 캐릭터들이 모두 저를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그레이쥬스는 논픽션입니다.(웃음) 제 삶에서 가장 관심 있고 중요한 사건들이 작품의 메시지가 되어 주고 있죠.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다면 앞으로는 좀 더 정리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해요.

        아티스트로서 새로움을 창조해야 한다는 소명과 사업가로서 성공적인 브랜드가 되는 미션이 어떻게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지 비결이 궁금하군요.

        연찬: 분명 딜레마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회심의 작업을 하고 나서도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까? 불편해하지 않을까? 안 팔리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이 작품의 원래 목적을 뒤흔들기도 하죠. 물론 그러한 타협이 잘 팔리는 브랜드로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창작’과 ‘사업’ 두 과정을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어요. 영주 디렉터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환경 안에서 창작하면, 제가 상품화와 세일즈 영역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두 구간이 뒤섞이지 않도록 관리하죠. 우리가 꿈꾸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기조예요. 그것을 최대한 지켜나가면서 이 과정들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자체가 브랜드의 색이 되고 정체성이 될 때까지요. 앞으로도 다른 브랜드의 성공담이나 전략을 답습하기보다는, 우리만의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적으로 적용해 보는 시간들이 이어질 겁니다.

        기성 미술계에선 ‘듣보잡’이었더라도, 새롭게 짜여지고 있는
        이 판에서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네임드’가 될 수 있는 거죠.
        NFT 시장에서는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어요.
        피지컬 아트에 이어 최근에는 NFT로도 확장하셨죠.

        연찬: 우선 NFT를 위한 아트워크 작업은 영주 디렉터가, 그걸 활용해서 NFT로서 상품화하고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건 제가 하고 있어요. 시작은 코로나19 이후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된 게 계기였어요. 알아보면 볼수록 ‘재미있겠는데?’ 생각이 들어 무작정 시작해 보게 됐죠. 무엇보다도 아트워크를 물리적인 상품으로 생산하지 않아도 세일즈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남는 재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그레이쥬스의 방향성에도 너무 적절한 매체라고 생각이 들었죠.
        영주: 미술 시장이 예전에는 회화 쪽이었다면 이제는 그래픽 쪽으로 중심축이 점점 이동하는 것 같아요. 그래픽 작품만으로도 작가로서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확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고요. 기성 미술 업계의 모순을 꼬집는 느낌도 적잖이 들고요. 밈으로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연찬: 저도 그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속된 말로 기성 미술계에선 ‘듣보잡’이었더라도, 새롭게 짜여지고 있는 이 판에서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네임드’가 될 수 있는 거죠. NFT 시장에서는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어요.
        영주: 크립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저희가 몰랐던 아티스트들도 많이 알게 되는데요, 협업의 기회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르와 협업도 많이 하고요. 최근에도 NFT 프로젝트를 위해 한 래퍼 분과 기획 회의를 했는데, 회의 도중 랩을 하시더라고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기획력이 정말 좋은 아티스트들도 많아요. 작품에 영화 같은 스토리라인을 잡는 분도 계시고……. 확실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장르예요.

        NFT 작품 중 한 가지만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영주: 이번에 임프레시브 프레젠트에서 그립톡으로도 발매된 아트워크 ‘드라이브’의 경우 차 안에 탄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그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자동차가 나아가는 것을 구현했어요. 저희 둘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라 더욱 애정이 가요. 결국 서로를 향한 열정이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죠.

        사람과 우주까지, 아트웍 소재가 다양한 편이에요. 작품을 위한 영감은 어떻게 얻으세요?

        영주: 업무를 마친 하루의 끄트머리엔 꼭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술 한잔을 하면서 머릿 속에 떠오르는 불특정한 이미지들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는 해요. 이 무아지경의 시간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매일 잠들기 전 꾸준히 하는 행동 중 하나예요.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미지, 영상들을 상기하며 평소 작품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주제를 상상 속에서 적용시켜 보면서 아이디어를 생산합니다. 반드시 까먹지 않게 침대 옆에 노트와 연필을 두고 구체적으로 메모를 해 두는 편이에요. 아, 가끔 밈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기도 해요.
        연찬: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요. 내 주변에 늘 있는 것들을 충실히 누리면서요. 고양이를 쓰다듬고 하늘과 나무를 보고 잡초를 고르며 흙을 만질때의 감정들이 스케치로 이어지기도 하고 뉴스, 영화 등 미디어가 실어나르는 메시지가 도화선이 되어 벌어지는 우리 두 사람의 논쟁이 아트워크의 소재가 되기도 해요.

        영감을 얻는 데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게 더할나위 없는 방법이에요.
        인류학자의 마음으로 대화한다고 할까요.
        평소 둘이 논쟁을 즐기고 그 논쟁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 놀랍네요. 지치지 않고 건강한 토론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영주: 비결이 제게 있지는 않은 것 같네요.(웃음) 과거에 만난 엑스 보이프렌드와는 아트의 소재가 될 만한 주제로 토론을 할 수 없었어요. 제가 조금 다혈질인 스타일이라, 말하다가 감정이 격앙될 때도 있죠. 그래도 팁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건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라는 생각으로 이야기해요. 토론이 언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이끌어 나가는 건 상대의 능력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든 대화의 결론을 지어야 한다는 사람인데 남편은 대화 그 행위 자체를 즐겨요.
        연찬: 제가 생각해도 저희 부부에게 주어진 토론의 특권은 제 공이 큰 것 같네요.(웃음) 영감을 얻는 데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게 더할나위 없는 방법이에요. 인류학자의 마음으로 대화한다고 할까요.(웃음) 정말 재미있어요. 물론 저도 제 의견을 이야기하죠.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저는 어렵지 않게 ‘그 말이 맞네’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어디로 흘러가는 지는 모르지만 대화 그 자체를 향유하는 거죠.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만의 돌파구가 있나요?

        연찬: 흩어진 고민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때는 거실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어요. 이상 행동을 하는 동물원의 동물들 처럼요…….
        영주: 저는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고 봅니다. 책을 보거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미지들을 찾아다니거나, 그리고 좀 더 세분화 시켜서 생각해보고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집요하게 매달리다보면 결국 답은 나오더라고요.

        터부시되거나 금기시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하고 싶습니다. 표현의 자유,
        그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주제를 시도해 보고 싶으세요?

        연찬: 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번 컬렉션의 메인 주제이기도 하죠. '관계' 라는 주제로 좀 더 깊이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다음에는 터부시되거나 금기시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하고 싶습니다. 표현의 자유, 그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영주: 도시와 시골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인구 소멸이라던가 시골과 도시에 산다는것 자체에 대한 이야기 말이에요. 아무래도 지금 살고있는 곳이 문경에서도 깊숙한 시골이다 보니, 이곳 어르신들과 도시 어르신들의 삶을 비교하며 관찰하는 게 재미있어요. 이 주제는 꼭 전시를 통해서 풀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2인 체제인 만큼 사소한 마찰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슬기롭게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이 있나요?

        영주: 저희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자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이기도 하죠. 24시간 붙어 지내느라 업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늘 뒤섞여있어서 많은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에요. 그래도 최대한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그것에 대한 방증으로 서로 관여하지않으려고 합니다. 반면, 사적인 영역에서 충돌할 경우에는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고양이들의 귀여움을 이용하는 편입니다.(웃음)

        잠시 신혼으로 돌아가서 이야기 해 볼까요. 어렵게 문경으로 귀촌을 결정한 직후, 다시 태국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영주: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치앙마이에 대한 동경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한국에서도 아주 유명해 지기 전이었어요. 음.. 바다 없는 제주도의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열흘 간 여행을 갔는데. 너-무 괜찮은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다시 또 치앙마이로 떠날 계획을 세웠어요. ‘살고 있던 집을 월세로 얼마에 내놓고, 고양이들은 어떻게 데려오고, 차는 어떻게 중고로 사고…….’ 이런 고민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얼마 안되는 예산을 놓고 계산기부터 두드렸죠. 사실, 지나고보니 에피소드인 것이지 조금 무모한 결정이었죠. 둘 다 노마드 라이프가 가능한 프리랜서여서 가능했어요.

        생소한 문화와 이국적인 자연환경에 뒤섞여 살았던
        그 시간이 마치 그레이쥬스의 미션인 ‘다양성’을 얻기 위한
        수행기간처럼 느껴져요.
        시기적으로는 그레이쥬스를 만들기 직전인데,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영주: 태국 치앙마이에서 어쩌면 그레이쥬스의 바탕이 되는 영감을 다졌던 것 같아요. 나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 생소한 문화와 이국적인 자연환경에 뒤섞여 살았던 그 시간이 마치 그레이쥬스의 미션인 ‘다양성’을 얻기 위한 수행기간처럼 느껴져요. 그때 치앙마이에 살면서 묵은 게스트 하우스를 우연한 기회로 인수해서 운영하기도 했어요. 2년 정도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매번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직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죠. 1층에서는 드로잉 클래스를, 2층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어요.

        타국에서 게스트 하우스 운영만으로도 벅찼을텐데요. 드로잉클래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영주: 남는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싶었어요. 저희 둘 다 현지에서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기도 했고요. 연찬 대표랑 함께 드로잉 클래스 커리큘럼을 짰는데, 인스타그램에 한번 올리고 마는 짧은 클래스는 만들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이틀에 걸친 드로잉 클래스를 만들었어요. 반응은 뜨거웠죠.(웃음) 그 클래스를 통해 지금까지도 이어진 귀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나름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가나다라’라고 아시려나……. 숙소는 현재 없어졌지만 그때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과는 아직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연찬: 어떻게 손님들이 단 한 분도 빠짐없이 조식을 드시더라고요.(웃음) 한인 위주의 게스트하우스이다보니 한국인인 저희에게 기대하는 수준도 남다르셨던 것 같아요. 기대에 부응하고자 일반 민박 대비 여행자분들에게 꽤나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렸던 것 같네요. 돈 주고도 못 얻을 인생의 큰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귀촌과 태국으로의 이주 모두 큰 용기가 필요한 경험이었을 텐데요.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두 분의 역할 분담이 따로 있었나요?

        영주: 기능적으로 분담을 하는 편이긴 해요. 저는 주로 제안을 해요. 제안과 푸시(웃음). 호방한 성격이라 결단이나 실행에 거침이 없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신중하게 듣고 세삼하게 판단해 주는 편이에요.
        연찬: 네, 저는 아이디어를 내기 보다는 주로 ‘워-워-’하면서 듣고 수렴하는 편이에요. 제가 보통 작은 것에 연연하는 편이긴 한데, 다행인 것은 저희 둘다 큰 일에는 연연하지 않고 결단력이 있어요.
        영주: 저는 대충 시작하고 완벽해지자 느낌이라면, 남편은 체계적으로 대비를 한 다음 진행시키는 타입이죠.

        이곳에서 산다면
        ‘우리 인생이 정말 다채롭고 예뻐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문경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어요.
        지금은 경북 문경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시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연찬: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막연하게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이 있긴 했지만요. 몇 년 전 문경이 고향인 학교 후배가 저희보다 1~2년 먼저 귀촌을 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때 놀러갔던 우연이 인연이 됐어요. 주변에 온통 논·밭과 산, 나지막한 시골집들 뿐인 이 곳에서 저희는 부부는 엄청난 안락함을 느꼈어요. 그 후로 그곳에서 우리가 살집을 그려보고, 살아갈 우리 둘의 모습도 함께 상상해 봤죠. ‘이곳에서 산다면 우리 인생이 정말 다채롭고 예뻐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문경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어요.

        문경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어떤 동네인가요?

        영주: 우선 산이 너무 멋있어요. 어딜가든 계곡, 하천, 강을 끼고 있어서 건조하지 않아요. 습하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트래킹 코스도 너무 좋고요. 문경새재는 뭐, 두 말 할 것 없이 너무 유명하죠. 유모차를 끌고 가도 될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어요. 휴게소도 중간중간 있어서 파전이나 국수도 먹으면서 경치를 즐길 수 있어요. 인구소멸도시라 사람도 많이 없어요. 슬픈 이야기를 너무 밝게 했나요.(웃음)
        연찬: 도시에서는 무관심의 미덕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참견이 미덕인 것 같아요. 확실히 어르신들이 무뚝뚝하긴 하시지만요. 어투가 친절의 척도는 아닌것 같아요. 적어도 시골에서는요.
        영주: 이사온지 얼마 안됐을 때는 말도 없이 복분자랑 감을 따다가 집 앞에 툭 놓고 가시더라고요. 문경 식 애정표현이랄까요.(웃음)

        자영업자이자 아티스트로서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나요?

        영주: 음, 불안을 이겨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불안할때마다 저항하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그 불안을 모두 받아냅니다. 어찌보면 불안도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불안과 사이좋게 살고 있습니다. 말하고 보니 책 제목 같네요.(웃음)

        브랜드의 슬로건 ‘MIX ALL’
        그리고 작품에 담은 메시지들이 실제 우리의 삶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들여다 봐요.
        작품에 위배되는 위선적인 삶을 살지 않기위해서 노력하는데
        참 쉽지 않네요.
        아티스트로서 부채감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 있다면요?

        연찬: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질문처럼 무겁게 다가오네요. 브랜드의 슬로건 ‘MIX ALL’ 그리고 작품에 담은 메시지들이 실제 우리의 삶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들여다 봐요. 작품에 위배되는 위선적인 삶을 살지 않기위해서 노력하는데 참 쉽지 않네요. 현실적으로는 자연에 파괴적인 소재를 작업에 사용하지 않거나 포장재를 줄이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쓰레기는 활용해서 전시 작품을 만드는 등 여러가지 고민을 실천으로 이어가는 중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나 아이템이 있다면 몇 가지 소개해주세요.

        영주: 트렌드와는 무관하게 아티스트의 개성이 잘 드러난 브랜드를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벨기에 디자이너 브랜드 월터 반 베이렌 동크는 작가의 고집이 과감한 패션아이템들에 강렬하게 드러나면서도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선보이는 브랜드예요. 이 밖에도 릴리안 마리티네즈가 만든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인 BFGF와 사랑스럽고 위트넘치는 액세서리 브랜등인 쿠쿠수제트 그리고 아스티에트 빌라트의 도자들을 수집하는것도 좋아해요.

        최근 누군가에게 인상적인 선물을 한적이 있나요?

        연찬: 태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해, 아버지 생신날 부모님 두 분의 얼굴을 그려서 선물했어요. 제가 드로잉하고 그 위에 영주작가가 컬러링을 해서요. 어쩌면 받은 두 분 보다 드린 제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영주: 밈 같은 이미지로 초상화 그려주는걸 좋아해요. 상대방들은 별로 내키지 않아 하겠지만 내가 즐거운 선물인 걸요. 손글씨를 정말 못쓰는 편이지만 선물에는 꼭 손글씨를 적어 보냅니다.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 정확하게 나가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팬으로서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글이었어요.
        지금까지 받았던 선물 중 가장 인상적인 선물은요?

        영주: 처음 남편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요. 포장도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까만색 비닐봉지에 건자두 두 봉지와 덧양말이 두켤레 들어있었어요. 제 변비를 위해 건자두를, 발이 시려워 보여서 덧양말을 샀다고 해요.(웃음) 남편과 연애시절 처음 받아본 생일선물인 만큼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적이었어요. 그런데 왜일까, 순수하단 생각이 들었죠. 누구나 들이밀 법한 선물이 통하지 않는 나라는걸 남편이 본능적으로 알아 차렸을 지도 몰라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확실히 전 독특한 선물 경험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긴 해요.
        연찬: 그레이쥬스를 처음 시작할때부터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해 주신 오랜 팬 분이 있어요. 그 분이 그레이쥬스 블랭킷을 구매하시곤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려 주셨어요.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 정확하게 나가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팬으로서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글이었어요. 제품 하나에 수 만 번의 고민을 하면서 지쳐있던 때여서, 정말 커다란 위로의 선물을 받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꾸준히 작업해온 자신에게 무언가를 선물한다면?

        연찬: 저보다는 영주 디렉터에게 작업실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영주: 친구들과 술을 마음껏 마시고 흥청 거리며 놀수있는 나만의 작업실이요. 마구 어지르고 치우지 않아도 괜찮다면 좋겠어요.

        열어보고 싶은 이야기, 캐비네츠

        임프몰의 온라인 매거진 <캐비네츠 CABINETS>는 간직하고 또 꺼내어 보고 싶은 것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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