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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KING OUT OF THE CANVAS

        캔버스 밖으로 유영하기

        인터뷰스텔라장손민희
        손민희

        작가

        서울 / 31세

        손민희는 마음속에서 막 꺼낸 듯한 뜨겁고 서늘한 감정을 그리는 작가다. 그는 종종 자신을 예술 노동자라고 표현한다. 그 단어의 배경에는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의 고단함과 더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표현 방식을 넓혀나가는 성실함이 있다. 손민희가 그려낸 초현실적인 존재들은 전시장과 SNS 혹은 누군가의 휴대폰 케이스를 오가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전시가 많았죠.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요즘은 작품 사이즈를 키우고 있어요. 주제 면에서의 큰 변화는 없지만 크기가 커지다 보니 표현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애썼다면 요즘에는 감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주로 오일 파스텔을 사용해 작은 크기의 작업을 해왔죠.

        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다양한 크기와 매체로 작업을 했는데, 졸업하고 오랫동안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제약이 많았어요.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 그려야 하니 사이즈도 줄여야 하고, 유화나 아크릴 작업을 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이런 조건을 고려했을 때 가장 콤팩트한 작업 방식이 스캔이 가능한 A3 이하의 종이에 오일 파스텔을 사용하는 거였어요. 제 나름대로 고안해낸 작업 키트인 거죠. 물론 작가의 성향과 재료가 잘 맞는 것도 중요해요. 재료가 요하는 정서나 체력이 각각 다르거든요.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 오일 파스텔이 잘 맞았어요. 또 겹겹이 색을 쌓을 수도 있고, 마른 다음에 다시 긁어낼 수도 있고요.

        그림에서 우울과 고독, 단절이라는 주제가 드러나고, 그렇기에 관계나 연결에 대한 욕망 또한 강렬하게 느껴져요. 이런 주제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독이나 우울함이 저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큰 부분이거든요. 예전에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제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2030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많은 분께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제가 단절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리는 그림으로 인해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지금도 신기해요. 동시에 어떤 희망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인간의 몸을 한 동물이나 식물,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그림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초현실적인 장면을 즐겨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제약이 생기기도 하고요. 초현실적인 결합물을 만들거나 상상 속 장소를 그리며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껴요.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페르소나가 있다면요?

        영화 〈더 랍스터〉는 45일 동안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는 커플 메이킹 호텔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요. 영화를 보면서 만약 제가 다시 태어나면 무슨 동물이 될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까마귀가 되고 싶더라고요. 그림을 그릴 때도 까마귀에 저 자신을 대입해서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을 까마귀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참, 제 팔에 까마귀 타투도 있어요. 한때 타투를 배운 적이 있어서 직접 한 거예요.

        요즘은 온라인에서 예술 작품을 다양한 경로로 접근할 수 있게 됐어요. 원화가 아니라 굿즈를 통해 작품을 먼저 접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작가님도 직접 휴대폰 케이스, 그립톡, 책갈피, 티셔츠 등 다양한 굿즈를 생산하죠.

        네, 스마트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어요(웃음). 굿즈는 아트 페어, 북 페어에 참여하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 작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낮은 편이에요. 실제로 뵈면 그림을 아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높은 가격대의 굿즈는 구입을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원화 외에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도 제 그림이 생활 속에서 매일 쓰이는 게 좋더라고요.

        예술 작품과 예술 작품을 사용해 만든 굿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희소성의 차이 같아요.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기보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의 차이겠죠. 저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굿즈를 생산할 때 몇 가지 느슨한 원칙을 세우게 됐어요. 오리지널 작품을 그대로 인쇄한 포스터는 잘 만들지 않고요. 굿즈에 들어갈 때는 이를 위한 작품을 따로 그리거나, 일부를 잘라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굿즈로 생산하지 않는 작품을 정해놓기도 하고요.

        저는 온라인으로 작품을 봐도 쉽게 감동하는 편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일이 아티스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요.

        저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SNS에 올라오는 전시 이미지를 보면 이미 그 공간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실제로 방문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가진 두 가지 면을 다 고려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피드 꾸미기를 염두에 둔 〈3 scenes series〉처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유리한 구성과 크기로 그림을 그릴 때도 있고요. 오프라인에서 전시할 때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지금 이 공간에도 제 작업이 두서없이 전시되어 있고, 여기서 오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공간에 갔을 때 색다른 무언가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람객을 만나는 방법은 앞으로 더 다양해질 텐데요. 작품을 선보일 때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플랫폼이나 형식이 있나요?

        사실 제가 꽤 아날로그한 인간이라 조금 벅차긴 한데요(웃음). 아직 온라인 전시를 해보지 않아서 도전해 보고 싶어요. NFT도 기회가 된다면 작업해 보고 싶고요.

        지난 전시 〈Work In Progress〉에서는 아티스트가 SNS를 통해 직접 홍보하고, 일을 얻고, 돈을 버는 과정 자체를 작업의 일환으로 보았죠. 이 전시를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 제가 가장 자주 듣던 질문이 이런 거였어요. “네가 하는 게 상업 미술이야, 순수 미술이야?”, “너는 일러스트레이터야, 화가야?” 그런데 제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또 그걸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작가가 부재한 이모지를 소재로 선택해서 따라 그리고, 고화질로 스캔한 후 인쇄했어요. 회화인지, 디자인인지, 개념 작업인지 혹은 예술 작업인지 아닌지 관람객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바랐어요. 사실 전시 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어요.

        어떤 에피소드였나요?

        전시 이후에 한 화랑에서 연락이 왔어요. 규모가 큰 아트 페어에 제 페인팅 작품 몇 점과 〈Work In Progress〉 작업을 함께 걸고 싶다고요. 저는 작업을 하면서 가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값을 매기기가 어려웠죠. 그랬더니 화랑에서 제 생각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해 주셨어요. 물론 팔리진 않았는데요(웃음). 상업적인 페어에서 제 작품의 가격이 매겨져 걸렸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이 작업의 결말처럼 느껴졌어요. ‘이 작업이 페어에 걸린 거면, 그게 당신들이 말하는 예술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저는 사실 판매할 의도도 없고, 돈을 들인 작업도 아니고, 어떤 실험이었을 뿐인데 엄청난 가격을 호가하는 예술 작품 사이에 그 작업이 껴 있었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우리는 온라인에서 대화할 때 감정 상태를 이모지로 단순화해서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이 이모지를 회화로 옮기면서 그 명료함과 단순성이 무너지고, 어그러지는 점이 재미있더라고요.

        이모지를 그릴 때 트레이싱하지 않고 그렸기 때문에 삐뚤빼뚤하고, 비율도 다르고, 조금 엉성해요. 거기에서 오는 묘한 뒤틀림이 좋았어요. 그게 원래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다른 작업을 할 때도 스케치를 러프하게 하거든요. 백지를 두고 그냥 그리는 거죠.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사면서 구상을 미리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오랫동안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작업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종이를 자르고, 덧칠하는 등 작품에서 우연의 효과를 많이 얻은 것 같아요.

        작품에서 텍스트가 결합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울 수 없는 선 긋기〉는 감정을 문장으로 꺼낸 후 이미지화한 그림 시집이고요. 작가님의 작업 세계에서 언어는 어떤 요소인가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학창 시절에는 텍스트만으로 작업한 적도 있고요. 종종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기처럼 올린 글을 작업의 일부로 봐주시는 경우도 있어서 신기해요. 텍스트는 제 고유한 스타일이기도 하고 그림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텍스트로 인해 ‘이해의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요. 제가 명확한 의도를 가진 문장을 쓰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대부분 마음대로 해석하시더라고요(웃음).

        텍스트 외에도 그림 속에서 식물, 동물, 인간의 경계가 지워지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The vitality nurtured by solitude〉와 같은 작품에서는 식물의 생명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여요. 자연에서 어떤 영감을 얻는 편인가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동물이나 식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평소에 자연이나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데요. 영상을 틀어놓고 자연의 힘과 생명력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 마음이 차분해져요. 바다에 가서 멍때리는 것도 좋아해요. 거대하게 흐르는 물을 보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거든요.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일이 창작자로서 저에게 가장 필요하기도 하고, 동시에 커다란 영감이에요.

        제일 처음 좋아했던 아티스트는
        프리다 칼로예요.
        내가 느끼는 것을 드러내고,
        내 방식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걸
        알려준 아티스트죠.
        창작자로서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태도가 있나요?

        저는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데, 모든 물건이 항상 큰 비닐봉지에 담겨와요. 그게 너무 아까워서 모아뒀다가 작업할 때마다 깔아둬요. 오일 파스텔 작업을 쓰면 가루가 많이 떨어지거든요. 비닐이 지저분해질 때까지 몇 번을 쓰고 또 쓰죠. 또 제가 쓰고 남은 용기는 대부분 도구함 등 생활용품으로 재활용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원초적이고 대비가 강한 색을 잘 다루시죠. 색에 대한 취향은 어떻게 형성됐는지 궁금해요.

        작품에 색을 쓸 때는 본능적으로 결정하는 편인데요.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늘 화려한 옷을 입고,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 있더라고요(웃음). 이런 부분은 성장하면서 중화되기도 하는데, 저는 굳이 바꾸려 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학생 때부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정말 좋아하기도 했고요. 영화 속의 강렬하고 몰아치는 듯한 특유의 색감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옷을 입을 때도 그 취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제 옷의 반 정도는 아마 빈티지일 것 같아요. 빈티지 제품 중에는 화려하고 특이한 옷이 많잖아요. 나를 표현하고 싶지만 기성품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누구와도 겹치지 않고, 유행도 없고요.

        작가 생활을 하는데 힘을 불어넣어 준 아티스트나 작품이 있나요?

        제일 처음 좋아했던 아티스트는 프리다 칼로예요.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렬함과 적나라한 표현 방식에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느끼는 것을 드러내고, 내 방식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걸 알려준 아티스트죠. 최근 몇 년간 본 영화 중에는 〈미드소마〉를 가장 좋아해요. 상실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시각적 언어가 제 작업과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저에게는 그 영화가 공포가 아니라 처절하게 슬픈 이야기와 구원의 서사로 다가왔어요.

        지금 이 공간에 물건이 굉장히 많은데요. 특별히 가장 애착을 느끼는 사물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끼고 다니는 반지요. 얼마 전 생일에 엄마가 선물해 주신 거예요. 반지에 보석이 여러 개 박혀있는데 색깔을 자기가 정할 수 있어요. 하나뿐인 물건이라 좋아요.

        만약 자신의 그림을 선물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어요?

        부모님께 드리고 싶어요. 사실 본가 거실에 제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긴 한데요. 안 팔리거나, 앞으로도 안 팔릴 것 같은 그림만 있어서(웃음)… 그게 좀 미안하더라고요. 다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작품 세계를 어떻게 넓히고 싶나요?

        그동안 작품을 통해 여성의 몸을 많이 그려왔어요. 감정을 가장 적절하고 가감없이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죠. 제 초기 작업은 제 감정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이 사회를 사는 '여성'으로서의 나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 가려고 해요. 감정 너머의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앞으로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여성의 존재를 많이 등장시킬 거예요. 그래서 제 그림을 보는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위로가 닿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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